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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나무를 심는 남자

2004년 9월 10일에 작성한 글(옛주소 http://hanim.egloos.com/711383)의 본문을 복구합니다.

한손엔 어린순이 돋은 가지를 몇개인가 들고 어느 작은 남자가 길을 가고 있어요. 그의 허리춤에는 전정가위니 밧줄이니 테이프니 잡다한 물건들을 꽂혀 그의 걸음에 맞춰 우쭐대죠. 남자는 이름은 없지만 누구나 그를 펠릭스라고 부른답니다. 누구나 그렇게 부른다면 그게 이름이 아니라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야 어찌되었든 펠릭스는 계속 거리를 걷다가 한 사람을 붙잡습니다.

'시들어버린 당신의 행복을 새로 심어드릴까요'

사람은 누구나 가슴에 한그루의 나무가 심겨있답니다. 큰줄기는 없이 덤불같은 모양에 크기도 제각각이지만 한사람에 한그루씩의 소담한 나무가 말이에요. 이 나무에는 여러가지 이름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나무를 '행복'이라고 부른답니다. 지금 당신에게 닥친 슬픔에 그 나무가 시들어버렸지만 제가 가진 나무를 접붙이면 다시 자라날지도 몰라요.

펠릭스의 제안을 받는 사람은 받아들이기도하고, 거절하기도하고, 혹은 버럭 화를 내고는 무시하기도 한답니다. 그렇게해서 몇몇의 사람들의 가슴에는 펠릭스가 옮겨준 행복이 새로 자라나게 된답니다. 그 나무를 보며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은 행복해졌다는 것을, 앞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죠. 감사하는 그 사람을 떠나며 펠릭스는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당신의 행복이 충분히 자라면 제가 거기서 가지를 조금 잘라갈게요.'

기쁨에 가득한 사람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받은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수 있으면 저도 기쁠거에요.

그리고 사람의 행복이 자라나 아름이나 커지게 되면 어디선가 펠릭스가 찾아와 약속을 지켜달라고 말합니다. 행복이 가득한 사람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리고 조금 잘려나간 행복을 보며, 약간은 모자란듯한 느낌을 주는 자신을 행복을 보며, 그 느낌을 통해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잘려나간 작은 가지는 또다른 누군가의 품에 들어갈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사람이 있었답니다. 이름은 그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누구나 그를 그리드라고 부른답니다. 누구나 그렇게 부른다면 그게 이름이 아니라도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야 어찌되었든 그리드도 처음 자신의 가슴에 새로운 행복이 심어졌을때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만큼인지 모를 시간이 흐르고 행복이 자라나 아름이나 커지게 되었을때 펠릭스가 찾아왔지만 이때의 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소리를 버럭지르고 자신의 행복에 손을 대려는 펠릭스를 흠씬 두드리고는 행복 밖으로 쫓아내버렸답니다. 펠릭스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멀리 떠나버렸어요.

그리드의 행복은 그뒤로도 계속계속 자랐습니다. 나무가 두 아름이 되고 세 아름이 되어 그리드는 행복으로 가득하게 되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어요. 행복이 앞으로도 더 커질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래서 그리드의 행복은 어느샌가 지붕을 덮어버릴정도로 커졌답니다.

그리드는 모르고 있었어요. 그리드의 행복에 가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요. 지붕을 덮고, 거리를 덮고, 마을을 덮어가는 그리드의 행복에 다른 행복들은 햇빛도 가지를 뻗을 공간도 얻지를 못하고 점차 죽어갔어요. 그리드는 죽어가는 행복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주위는 행복으로 가득한데 왜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걸까. 왜 행복을 만끽할 줄 모르지. 그리드가 의아해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그리드의 행복에 밀려 마을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리드의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그리드는 약간 외로워졌답니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걸까. 나에겐 이렇게나 크나큰 행복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나 행복한데 말야. 그리드는 이제 몇아름인지 세지도 못할정도의 행복을 끌어안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행복을 보았을때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커져버린 행복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죽어갔던것처럼 자신의 행복 저 아래도 햇빛도 가지를 뻗을 공간도 얻지를 못하고 점차 죽어가는 것을요. 이미 중심은 곰팡이와 벌레들로 썩어가고 있었답니다. 그곳은 행복의 뿌리가 있는 곳이었어요.

'안돼. 내 행복이란 말야. 곰팡이와 벌레 따위에게 잃을 순 없어.'

그리드는 손을 뻗어 곰팡이를 뜯어내고 벌레들을 쫓아냈어요. 하지만 자신의 가슴에 있는 뿌리는 손이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있었고, 가까스로 뜯어낸 곰팡이는 금새 다시 자라고 쫓아낸 벌레는 같은 자리로 돌아왔답니다. 그리고 그리드의 행복을 계속 갉아먹었죠. 그리드는 뿌리부터 전부 썩어가기 시작하는 자신의 나무를 보며 그제서야 그 나무가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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