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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의 시간 1,2화

2008년 10월 11일에 작성한 글(글번호 0645, 옛주소 http://hannim.net/1091/)을 복구합니다.

요시우라 야스히로(吉浦康裕)씨의 1인 제작사 스튜디오 리카(スタジオリッカ), 그리고 DIRECTIONS의 신작 애니메이션 [이브의 시간(イヴの時間)]을 얼마 전에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뭐, 대개 접하는 방법이 누군가의 소개를 받거나 우연히 접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어쩌다보니 이 애니메이션에 푹 빠지게 되었네요.

미래, 아마도 일본.
"로봇"이 실용화된 지는 오래,
"안드로이드(인간형 로봇)"가 실용화된 지는 오래지 않은 시대.

이러한 때에 자기집 안드로이드(사미)가 지정된 명령대로 행동하지 않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주인공(리쿠오)이 친구 마사키와 함께 이를 추적하다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지 않는 카페, 이브의 시간에 가게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인간과 로봇이 구분 없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 ...카페 알파?

장르는 근미래 SF 정도로 보면 될까요. 아시모프 대선생님의 [로봇 공학의 삼원칙]이 필요할 정도로 고도로 발달한 로봇/안드로이드가 존재하는 세계니까 자를 붙이기는 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안드로이드와 몇 가지 기술(전자 칠판과 번화가의 곡면 전광판)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물은 다분히 현대적이라서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안드로이드는 대기나 이동 상태에서는 빨간색, 지정 행동을 할 때에는 녹색으로 변하는 머리 위의 홀로그램 링을 제외하고 인간과 똑같은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 각 개체가 서로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대화는 우리가 이전에 SF 작품을 통해 갖고 있던 고정 관념과 대치되어버립니다. 즉, 명료한 명령을 위해 인간은 안드로이드에게 단어로 조합된 단순한 말을 사용하는 반면, 안드로이드는 완전한 문장으로 응답합니다. 다른 작품들처럼 인간은 사람답게 말하고 안드로이드는 무개성한 기계음으로 대답해야하지 않나하고 생각해버릴 수도 있지만 사실 공학적으로 생각해보면 작중의 표현이 그런 것보다 상식적입니다.

뭘 마음대로 하는 거야. 너까지 인간 흉내를 내려는 거냐!
저는 안드로이드입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마스터.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실제 현상에서 오는 혼동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안드로이드 머리 위의 링을 유지하는 것은 절대적인 법이며, 무심코 안드로이드에게 고맙다고 대꾸했다가는 돌리계(ドリ系, 안드로이드 정신의존증)라고 놀림을 당해버립니다. 더군다나 그런 인간이 안드로이드를 신뢰할 리조차 없습니다. 작중 여러 곳에서 이러한 기계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자극하는 (농약과 화학비료,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공포와 비슷한 맥락인 듯한) 윤리위원회의 광고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하지만 리쿠오는 스스로 아니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리고 이브의 시간을 알게 되면서 변화하게 되죠. 인간 사회가 바라는 형태의 변화는 아닐테지만요.

"이브의 시간" 룰 : 이 가게에서는 인간과 로봇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브의 시간]이라는 공간은 작중의 현실을 기준으로 봤을 때 매우 판타지적입니다. 안드로이드가 자연어(사람이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으며 자유 의지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바깥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니까요. 몰랐던 사실을 알게된 리쿠오와 마사키는, 이를 계기로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화까지 공개된 현재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네요. 리쿠오는 자신 안에 있던 괴리가 조금 무뎌졌을 뿐이고, 마사키는 여전히 완고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종종 이렇게 생각해. "당신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라고. 그게 여기에 오는 이유야.

아직 몇 가지 베일이 남아있고 캐릭터들의 태도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화, 그리고 6화까지의 나머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네요. 2화 끝부분에서 아시모프 대선생님의 오마쥬인 듯한 이름을 가진 아시모리 박사라는 사람이 잠깐 등장하는데, 이 사람이 이야기에 어떤 큰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요.

이 애니메이션은 연출, 특히 앵글의 사용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보는 동안 평소와 달리 그런 부분에 신경이 가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특별한 느낌이었거든요. 줌을 이용한 연출이라던가 캐릭터의 생동적인 시각으로 대상을 본다던가 하는 부분 말이죠. 그런저런 여러가지를 통틀어 이 작품의 부제 Are you enjoying the time of EVE?에 대한 제 대답은 현재 긍정입니다.

Are you enjoying the time of EVE? 028 (tm) Version 1.10.08.01
(c) 2008 Studio – RIKKA All rights reserved.
Scanning EVE drives ……._
No drive attached to code:LIFE, The BIOS is not installed.

마음에 들어 몇 번 반복해서 본 덕분일까요, 이 작품도 보면서 소소하게 볼꺼리가 많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애니메이션으로 이런저런 짓을 했던게 떠오를 정도로요. 예를 들어 위의 문구는 이브의 시간 로고 직전에 뜨는 바이오스 화면인데 [Studio – RIKKA]에서 만든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당연한 거군요;; 어쨌든 드라이브 탐색 결과 메시지가 좀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합니다. 스튜디오 리카는 다른 곳에서도 조금 더 나옵니다. 1화 앞부분에서 나오코가 TV 채널을 돌리는 장면에서 윤리위원회 광고가 나오는 채널은 [TV RIKKA]입니다. 방송국 로고도 스튜디오 리카의 로고죠. 그리고 사미의 행적을 찾는 장면에서 전광판 중 가운데의 것에서 스튜디오 리카의 전작 [페일 코쿤(ペイル・コクーン)]과 [물의 언어(水のコトバ)]가 나옵니다(다른 전광판은 TV 채널에서 나왔던 화면들). 3화 예고편에서 코우지 위에 흐르는 영상 파일들의 확장자 [.rik]도 스튜디오 리카의 rik겠죠.

리쿠오의 모바일, 리쿠오 집의 TV, 이브의 시간 한 쪽 벽을 채워 고철을 덮은 숲을 보여주는 4x4개의 디스플레이, 나기가 쓰는 전기레인지, 아시모리 박사 뒤쪽의 대형 화면 등 메이커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전자 제품은 [HOSHIMA]의 제품입니다. TOSHIBA의 패러디일까요. 덧붙여 리쿠오가 사미의 로그를 확인하는데 사용한 프로그램은 [Android CHECKER Ver 1.0], 1.0이라니 안드로이드가 실용화된지 정말 오래 안되었나보군요.

이브의 시간은 복층 구조입니다. 그런데 건물 입구에서 이브의 시간 입구까지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않았죠. 2층 부분은 실제로 건물 1층에 위치할 것 같지만 이브의 시간에서 봤을때 창문은 없습니다. 뭐, 밖에서 봤을 때는 건물이 "그렇게" 생겼으니 창문이 없는 것이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요. 바에 의자가 5개 정도, 원탁이 5개, 소파 테이블이 2개 정도의 규모인데도 종업원은 나기 한 명 밖에 보이지 않던데(주방 담당이 한 명 정도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키코의 말로는 손님이 거기서 거기라니까 충분하려나요. 가게의 성격상 여러 명이 그룹으로 찾아올 곳도 아니긴 하네요.

이 작품은 야후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그리고 이브의 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일본어).

덧붙임.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알았는데 글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수정하지 않을테니 맞춰보세요. ^^;;

덧붙임. 덧글 복구

cute0: 반가운 마음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에..그리고, 혹시 드리계 -> 도리계 가 아닌지요? :D
한님 : 최근에는 우리식으로 적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우리식으로 적고 있습니다. 일본어 발음으로는 [도리케이]입니다만, 어원을 [Android Holic(=系)]으로 보고 [드]라고 적었습니다. 어느쪽 [d]든지 [드]로 발음되는 부분이니까요.
한님 : 오늘 다시 보면서 생각했는데 [Android Holic]로 볼 수도 있겠네요. 이 경우의 우리식 표현은 [돌리계]가 될 것 입니다. 일단 이쪽이 더 말이 되는 것 같아 본문은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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